존경하는 재판장님, 그 동안 공정하고 신중하게 재판을 이끌어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종교계 지도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저를 포함한 시국사범들의 사면을 요청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저의 석방을 기도해주시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달리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어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서 있는 이 법정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제가 운영했던 회사가 국고를 부당하게 축내었다는 혐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한다는 저의 신념이 응축된 곳입니다. ‘이윤보다는 가치를’, 노동이 살아 있는 사람중심의 새 형의 기업을 지향했습니다.
이 법정에 선 제 동료들과 저는 회사를 통해 무명의 진보정당 후보들을 지원했고, 적지 않은 성과도 이룩했습니다. 지역의 풀뿌리 정치인들, 잠재력은 있지만 돈이 없고 정책적으로 진보성이 뚜렷한 정치인들에게 저의 회사는 기댈 언덕이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일을 맡길 수 있는 회사, 한번 손을 잡으면 끝까지 함께 돕는 회사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정치사건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에게 국가관이 문제가 있다고 말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회사의 대표로 재직한 적이 없었다면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사건이며 아마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일입니다.
이 사건으로 저를 감옥에 가두는데 실패한 박근혜 정권은 다음해인 2013년에 내란음모사건을 만들었습니다. 내란음모사건은 이미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시작한 이 재판은 이제야 항소심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이 사건의 선후차는 이번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제가 의원직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혔으니 이번 사건은 애초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재판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들씌웠던 저와 동료들에 대한 도덕적 흠집을 씻어내고 싶습니다. 저와 동료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재판부의 공정한 판결을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오늘, 20일은 원래 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로 예정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오늘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국민 위에서 군림하면서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기고만장했던 박근혜 정부는 결국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으며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습니다.
저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들은 박근혜 정권 치하를 가로질러 온 상징이기도 합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벌어진 종북 논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국고 편취 혐의, 애국가를 놓고 벌어진 국가관 시비, 30년 만에 책 속에서 부활한 내란음모조작사건. 그리고 내란음모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선동만을 따로 떼어 내어 9년의 실형을 언도한 양승태 대법원까지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이 모두는 진보정치세력을 제도권에서 축출하려는 박근혜 정권의 악랄한 의도 위에서 벌어진 사건들입니다. 따라서 이 모두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단죄와 함께 정상적으로 종결되어야 마땅합니다.
물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몰락했다고 해서 모든 적폐가 사라질 수 없음을 말입니다. 개혁은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며 더욱이 70년을 지속해온 분단이 만들어낸 적폐 청산 과제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간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견해를 이단시하면서 오직 자신만이 옳다는 식,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종북’이요, 적이라는 박근혜식 사고방식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갇힌 몸으로 이 법정에 서 있습니다. 이제 낡은 시대가 저에게 부과하였던 굴레를 벗겨줄 때가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여곡절은 있겠으나 역사의 진보는 분명합니다. 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언제나 진실이었습니다.
옥중 다섯번째 겨울을 맞이 합니다. 이 겨울 속에 새봄이 자라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역사의 새봄을 믿으며 재판부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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