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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과 옥중메시지

[전문] 이석기 의원 'CNC 사건' 1심 최후진술

 

그간 공판을 진행해주신 재판부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처음 모두진술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번 사건은 그 출발에서 정치적 기획수사의 하나였습니다. 직원 10여명 남짓되는 조그마한 회사에 대해 공안검사 수십명이 달려들어 먼지털이식으로 수사를 하였습니다. 협력업체 수십 곳을 압수수색했고, 불러낸 참고인의 숫자 또한 전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 정도 인력과 시간을 투입했다면 어쩌면 거대 재벌 하나쯤을 망하게 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수사 과정 뿐이 아닙니다. 검찰은 국고 사기라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법 적용을 하였습니다. 저의 동료들과 또 저의 회사와 함께 선거를 치렀던 풀뿌리 정치인들을 기소하였습니다. 이렇게 잔인하게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한 사건을 저는 미처 알지 못합니다.

 

이 모두는 제가 박근혜 정권의 미움을 샀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6월,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에 이미 저의 국가관을 시비하며 의원직 제명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공판 과정에서 확인된 것처럼 저에 대한 수사는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기 이전인 비례대표 후보자 시기에 착수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검찰의 목표는 의원직 박탈이었습니다. 처음엔 저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그것으로 안되니 통합진보당 비례 경선에서 제가 부정을 범한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고, 그것으로 안되니 제가 운영하던 회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자 결국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혐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대법원은 저에게 씌워진 내란음모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몰아갔던, 내란음모사건엔 내란음모가 없는 희한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9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저에게 씌워진 굴레는 이렇게 집요하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제가 지금 의원직을 빼앗기고 감옥안에 갇혀있으니 어쩌면 검찰이나 정권의 입장에서 이 사건은 애초의 기능을 상실한 사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선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87년 이후 저의 소신입니다. 지난 현대사에서는 진보진영이 선거를 통한 집권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2004년 회사를 설립할 당시에 저는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심정이었습니다. 회사를 열었던 첫날 저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회사에 몸 담았던 마지막 날까지 이를 소중히 지켰습니다.

 

첫째, 진보진영에 기여한다는 설립 목적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이 무명의 진보정당 후보들에 대해 지원해온 지난 10년 간은 재무적 측면에서 손실을 동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윤 추구가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의 회사를 만들어왔습니다. 지역의 풀뿌리 정치인들, 잠재력은 있지만 돈이 없고 정책적으로 진보성이 뚜렷한 정치인들에게 저의 회사는 기댈 언덕이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일을 맡길 수 있는 회사, 한번 손을 잡으면 승리할 때까지 끈질기게 달라붙어 돕는 회사였습니다.

 

둘째는 자본주의적 경쟁에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회사로 키우고자 했습니다.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전문성과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과학적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을 파악하고, 민중에게 꼭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하나의 '창조'였습니다. 무명의 여성농민이 기득권세력을 꺾고 도의원에 당선된 사연이 대표적입니다. 2009년 전국 최초의 진보교육감을 당선시키는데 일조할 정도로도 성장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전국적 무상급식으로 이어졌고, 작지만 우리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원 누구나가 주인이 되는 회사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노동이 소외되는 직장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일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회사의 발전 과정은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이면서도 시장경제에서 살아남는 과정이었습니다. 실력을 키운 동료들이 하나씩 회사를 맡도록 하는게 창업 당시 저의 구상이었습니다. 여론조사회사로 출발하여, 지난 10년 동안 선거컨설팅, 행사기획 그리고 여행업까지 회사 동료들은 새로운 회사를 하나씩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자리잡힌 회사를 동료들에게 넘겨주고 저는 직업정치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벽두부터 저에게는 집중적인 표적수사가 이뤄졌습니다. 그 3년동안 회사는 유례없는 난관에 봉착해야 했습니다. 내 몸처럼 아끼고 키워온 회사가 어이없는 정치공세 속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저는 멀쩡히 잘 자라고 있는 생나무가 뿌리채 뽑혀 나가는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얼마전 공판기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법정이었습니다. 저는 본 법정 문 앞에서 입장을 대기하고 있었고 법정 안에서는 다른 사건의 선고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우연하게도 저는 판결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구속된 어느 기업 총수의 배임횡령 사건이었습니다. 세간에서 재벌 표준 형량이라고 일컬어지는 3년에 4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법정을 걸어나갔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백억 원대의 천문학적인 횡령사건과 이 사건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백 만원 안팎의 돈을 편취했다고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이 기소되어 파렴치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분노하는 것은 이 사건이 진보진영에게 도덕적 흠집을 내기 위한 '의도적인 모욕'이라는 점입니다. 검찰은 광역단위 선거처럼 유명 정치인들이 관여되고, 큰 금액이 사용된 선거는 아예 기소도 하지 않고 그 액수의 1/10, 1/100도 되지 않은, 얼마 되지 않은 돈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던 지역의 풀뿌리 정치인들과 활동가들만 모아서 기소를 하였습니다. 공평은 커녕 누가 보아도 치졸한 짓이었습니다.

 

더욱이 저와 저의 동료들에게 씌워진 '국고사기'라는 혐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기라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남을 속였다는 것인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싸우는 진보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누구를 속여 무엇을 얻으려 했단 말입니까. 만약 저와 저의 동료들이 몇십만원, 몇백만원의 돈이 목적이었다면 그 고단한 길을 무엇하러 걸었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회사를 설립한 이래 늘 준법을 강조해왔습니다. 허나 실무적으로 미숙한 처리가 있었음을 재판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제가 있어서 생긴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입니다. 만약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저에게 물으시고, 다른 분들은 선처해주시기를 호소드립니다.

 

이제 감옥 안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습니다. 올 한 해 많은 분들이 힘을 주셨습니다. 가까이는 법정에 찾아 오신 분들도 계시고 멀리는 해외에서 마음을 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만해스님은 옥중시에서 '국화꽃 피면 다시 만날 약속 잊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평화의 봄날, 민주의 그 따뜻한 봄날에 다시 만날 약속 잊지 않으려 합니다.

 

감옥안이라고 세상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보름 전,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고 계신 백남기 선생의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평생을 민주화와 우리 농업 살리기에 헌신하셨던 분이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다는 지금 경찰의 폭력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무엇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이런 고난을 주는지, 만약 신의 섭리가 있다면 참으로 야속하기만 합니다.

 

세간에는 힘이 곧 정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가 힘이 되리라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님의 정의롭고 너그러운 판결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