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자존과 주권을 이야기하는 정치인' 이석기 전 국회의원 :: [전문]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최후진술

2014.08.07 12:35

[전문]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최후진술

최후진술 (2014.7.28)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지만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세월호 참사 진실을 규명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사건이 처음 시작된 것이 지난해 828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로 꼭 11개월이 됩니다. 최근 저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만약 20124월 총선에서 야권이 새누리당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얻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아닌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길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단순한 가정은 이번 사건의 본질입니다. 현 집권 세력은 정치적 목적으로 국정원을 동원하고 검찰을 내세웠습니다. 우리는 이런 정치재판, 사상재판의 시대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지난 1년간 저는 일주일에 많게는 네 번씩, 적게는 한 번씩 법정에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대형 간첩단 사건이나 알카에다 같은 무장테러세력처럼 보도되었던 엄청난 내란음모사건은 이제 최소한 사실이 무엇이고 사실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밝혀졌습니다. 드러난 것은 국정원 프락치 이성윤의 거짓 진술과 누더기가 된 녹취록의 진실이었습니다. 특히, 국정원에 의해 조작되고 언론에 의해 기정사실화 된 녹취록을 사실에 가깝도록 바로잡아주신 항소심 재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것처럼 저는 내란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으며 북과 연계하려 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소된 당원들이나 저의 강연을 들은 동지들 그 누구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 기간 저는 법정에 나와야 했습니다. 물론 1심 재판부와 검찰은 오늘까지도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실체로 존재하는 내란음모가 적발된 사건이 아닙니다. 내란음모는 국정원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국정원이 자신의 대선개입이라는 범죄행위를 덮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둘째 한국사회의 금기라 할 자주의 입장에 선 정치인과 진보정치세력의 입을 막기 위해 날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북색깔공세로 야권의 일각을 파괴함으로서 야권연대를 막고 궁극적으로는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이번 사건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에 피고인으로 이 자리에 서야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국정원과 그를 비호한 공안세력입니다.

 

내란음모 관련하여 총 한 자루는커녕 계획서 종이 한 장 나온 게 없습니다. 작년 2013.5.12. 전후 3개월 동안 여기 있는 도당 간부들을 연락하거나 만난 적도 없습니다. 지난 3년 동안 공식행사, 집회 공무 외에 만나거나 연락한 바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내가 지시하고 공모했다고 듣도 보도 못한 RO총책이라는 붉은 감투를 씌었습니다. 수년간 만나거나 연락한 바 없이 어떻게 그런게 가능한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경기도당 요청에 따라 강연자로서 강연을 했을 뿐입니다. 격변기 정세에 대한 엄중함과 진보주의자로서의 시대적 사명감을 강조하기 위해 몇몇 전투적이고 군사적인 표현이 있긴 하였으나 내란음모, 선동으로 둔갑할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5. 12 강연에 대한 검찰의 편견과 오독, 짜깁기, 왜곡이 이번 사건의 특징입니다. 가령 초소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경기도당 활동가들이 일하는 사업 현장인, 예를 들면 장난감 도서관, 저소득층 공부방, 친환경급식센터, 의료생협등을 말하는데 검찰은 폭동을 위한 초소로 해석되는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아니,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 도서관에서 무슨 폭동을 음모한다는 것입니까?

 

평화협정 중요한가라는 강연 중 질의 응답에 대한 내용도 그렇습니다. 평화협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한반도 대립 갈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간과한 채 통상적인 반전캠페인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의식은 평화협정은 북미 간에 일괄타결해서 해결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는 5.12 강연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주체적이며 책임있는 자세와 관련이 있어 평화협정을 하는 서명운동은 일련의 제한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진단했습니다. 6자회담형식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위한 4자회담과 종전선언을 단계적으로 한국 주도하에 의제를 설정하고자 국회에서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한반도 지정학적인 위치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전면적인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북미 군사적 대결은 평화와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협상에 보다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한반도 긴장위기가 조절되거나 반복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나 만에 하나 94년도와 같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반하게 미국에 의한 군사적 도발이 발생한다면 사전에 막기 위한 경각심을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유비무환의 자세로 민족공멸을 막기 위한 준비를 100% 하자는 것이 강연의 취지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미국의 영향력을 하나의 상수로 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가 한국을 국빈 방문하였습니다. 최고의 예우로 맞았고 그 어느 때보다 한중관계가 좋다고 자찬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중국을 쳐다보며 살아가면 되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랜 우방이라는 미국과 새롭게 대국으로 일어선 중국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젠 스스로 두 발로 서서 북을 끌어안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제가 변화를 이야기하면 무조건 반사적으로 폭력 혁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정치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5.16이 그렇고 12.12가 그렇고 광주 학살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항쟁과 무엇보다도 1997년의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 폭력을 동원할 이유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암울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1990년대에조차 운동권 일각에서는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가에 대해서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 김대중 후보는 정권교체를 실현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당시 수배자 신분이었지만 저에게 이 경험은 그 무엇보다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제가 수감생활을 마치자마자 합법적인 진보정당을 지원하는데 모든 것을 바친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제가 왜 정치인이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헌법이 닦아놓은 터전 위에서 제가 갖고 있는 신념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집권을 함으로써 사회를 개혁하려했고 집권의 방법으로 무장폭동에서부터 전민항쟁까지 많은 노선을 연구해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빨리 바뀌는 것은 현실입니다. 현실이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을 때 새로운 노선이 비로소 태동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노선이나 이론이 현실보다 결코 앞설 수 없습니다. 이론의 정당성은 실천을 통해서 검증됩니다.

 

1997년 이후에 저의 노선은 한마디로 선거 혁명이었습니다.

 

선거를 통해서 집권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민중 자신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사회개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선거를 통해서 집권해야 민중이 지지하고 엄호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혁명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선거혁명이다, 저는 진보세력 집권전략을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일관되게 실천해왔습니다. 그런데도 국정원과 검찰은 1960년대, 70년대에 나올 법한 책자를 가지고 제가 그 무슨 폭력혁명, 사회주의 혁명이니 심지어는 내면화된 종북이라는 말도 하고 북과 연계되어 있지 않으니 더 위험하다는 말까지 합니다. 세상은 바뀌는데, 수십 년 전 책자만 고집하고 있으니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검찰이 진보운동가들을 따를 종()자를 써서 종북으로 보는 것은 그들을 누가 시키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을 자기 머리가 없는 바보이자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로 보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뀐 정권에 충성을 다 바쳐온 검찰에게 언론은 영혼이 없는 검찰이라는 조롱을 한 바가 있습니다. 검찰은 자신에게 영혼이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영혼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더욱이 진보운동가들이야말로 조국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들입니다. 저나 진보운동가들의 견해에 대해서 비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그 누구의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꼭두각시라고 매도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은 자주입니다. 자주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정치가 진보정치입니다. 과거와 달리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군의 작전권은 미국에 있고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15대 경제대국이며 GDP3%, 정부 재정의 14%의 국방비를 쓰는 세계 군사력 10위권에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아직도 스스로 군을 지휘할 수 없고 심지어 이걸 돌려받자고 했던 예전 정부의 합의를 지금 정부가 나서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이 기막힌 현실을 번연히 눈으로 보면서도 차마 말하지 않고, 나아가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제까지 미국의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살 것이냐고 한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기했다고 종북으로 몰렸습니다. 미국의 어떤 관료는 그에게 미쳤다는 모욕적인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자주는 금기에 속합니다. 하지만 자주 없이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단 말입니까? 자주는 이미 시대정신이며 자주정신을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정치의 본령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통일대박론을 제기하였습니다.

 

우리 경제는 이미 성장 동력을 잃었습니다. 통일은 대박이 될 수 있습니다. 경제측면에서나 군사의 측면에서, 평화와 안보의 측면에서 통일은 우리가 개척할 수 있는 신세계임에 분명합니다. 박 정권의 통일대박론은 한계에 봉착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지만, 통일대박론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배제한 결과입니다.

 

북의 아이들이 남의 아이들보다 키가 작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북을 깔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아픈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입니다. 다수가 부정적으로 북을 보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긍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서로 칭찬하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통일이 될 것 아닙니까?

 

6.15 선언과 10.4 선언에 담긴 생각이 그것입니다. 남과 북은 오랜 기간 갈라져 살아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차이를 존중하되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 협력함으로써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 YS가 주창했듯이 그 어떤 동맹국도 같은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는 정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통일대박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주, 민주, 통일을 우리 시대의 과제로 생각해왔습니다. 선거를 통해 진보정당이 집권을 함으로써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주, 민주, 통일에 재갈을 물리려합니다. 이를 주장하는 정치인에게 내란음모의 모자를 씌워 감옥으로 보내고 이를 주장하는 정당은 위헌정당이라 해산되어야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반동이며 퇴행입니다.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거꾸로 돌아가려는 이 수레바퀴를 지금 당장 멈춰 세워야 합니다.

 

저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종북과 경선부정, 그리고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혐의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제와서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잘 알게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사건들은 하나같이 재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집권세력과 새로이 부흥하는 진보세력간의 갈등에서 생겨난 상징조작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일이 잘못되면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반구제기의 관점에서 성찰의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어둠이 물러가고 새벽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저를 감옥에 가두어놓고 그 어느 때보다 기세등등했지만 제 아무리 철권을 휘둘러도 국민에 맞선 정권이 끝내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은 박 정권에게 독선과 독주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비록 갇힌 몸으로 창살을 사이에 놓고 세상을 보고 있지만, 저는 역사의 반동은 일시적일뿐 영원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까지 재판을 이끌어주신 재판부께 그리고 저와 동료들을 위해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변호인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멀리 독일에서 저를 찾아와주신 회거 의원과 저희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교황님께도 각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석방탄원을 해주신 염수정 추기경님, 자승스님을 비롯한 4대 종단의 지도자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재판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셨던 진보당 당원동지들과 국민들께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격려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분단된 조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있고, 또 많은 나라들에서 군사독재와 민주화세력간의 투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분단이 없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법정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을 한 번도 원망해본 적이 없습니다.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너무나 귀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이 땅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민중의 역동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흐름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단은 일시적일뿐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정권도 이념도 한 때입니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강대국들도 결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민족은 영원합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분단의 시대를 끝내고 민족화해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열고자 분투해왔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저는 분단시대의 법정에 서있습니다. 분단시대의 법정에 선 피고인은 제가 마지막이 되길 저는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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