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술과 옥중메시지

[전문] '7.14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에서 공개된 이석기 의원 옥중서신

 

그리운 벗들, 사랑하는 여러분!

 

오랜만에 여러분께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지난 날의 일들이 영상처럼 떠오르고,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벗들의 눈망울과 정겨운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5년의 세월이면 갓난아이가 걸음마를 배워 뛰어 다니고, 중학생이 대학생이 되며, 강산의 절반이 뒤바뀔 만한 긴 시간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묵묵히 지지해 주고 믿음을 보내 준 여러분들이야말로 세월을 이겨낸 진짜 장사들입니다.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이렇게 감옥에서 인사를 드리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벗들을 생각하면 언제나처럼 가슴이 뜁니다. 세상에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반세기 넘게 우리 민족의 허리를 옥죄어왔던 분단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판문점에서 남북이 만났고, 싱가포르에서 북미가 만났습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변화가 이제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는 2013년 4월 국회연설에서 남과 북, 중국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서 한국전쟁을 영원히 끝내자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남과 북이 주도하는 4자 종전선언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4자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이행을 촉구한 것은 이미 한반도의 거대한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하에서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오히려 저의 한반도 전쟁위기 극복을 위한 평화 해법은 내란을 음모한 자의 종북적 발언으로 매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민중의 힘이 폭발해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니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건 몇몇 개인의 힘이 아닙니다. 남과 북의 민중을 대변하는 지도자가 결단한 것이지만, 이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우리 민중입니다. 이 자리에서 저와 만나고 있는 여러분입니다. 2년 전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민중의 외침이 이제 한반도에서 천지개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천 년이 넘게 통일된 자주 독립 국가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과 민중은 일제 식민통치와 분단이라는 족쇄에 얽매어 신음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도래할 새로운 역사는 지난 백 년과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백 년은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지만 예속과 분단을 뚫고 자주와 평화, 번영과 통일의 새로운 천년 역사를 예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 길은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길입니다. 4.27 판문점 선언이 이행되고 민족의 새로운 길이 개척된다면 누구든 그 길에 함께해야 합니다. 4.27선언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애국과 매국을 가르는 기준점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걷고자 하는 이 길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여기에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 새로운 길에는 과거의 은원도, 사소한 견해의 차이도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저도 그 길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자주의 기치를 들고 독재를 반대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폭압에 맞서 싸웠습니다. 청년의 열정과 헌신성으로 불의에 항거하였습니다. 이제 그 청년의 패기와 열정은 새로운 청년세대와 만나 더 치열하고, 더 넓게 타올라야 합니다. 한반도에 펼쳐진 지금의 시대사적 과제 앞에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하고 도전적인 사고와 창조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4.27선언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작점입니다. 우리가 외쳐왔던 자주, 평화, 통일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오긴 하였으나, 앞으로 예기치 못한 애로와 난관이 조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민중을 믿고 굳게 단결한다면 못 해낼 일이 없고 뚫지 못할 장벽이란 없습니다.

 

개벽은 낡은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입어왔던 낡은 외투를 벗고 새 옷, 새로운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평생을 바쳐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을 위해 싸워온 우리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지금 열리고 있는 새 하늘, 새 땅으로 나아갑시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 우리는 이 자리를 아름다운 승리의 자리로 추억할 것입니다.

 

저도 늘 함께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8년 7월 14일

수원옥에서

이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