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인사를 드리고 나서 벌써 두 계절이 바뀌어 성큼 겨울이 왔습니다. 감옥 안에서 여섯번째 맞는 겨울입니다. 하지만 좀처럼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겨울이 늘 사람의 준비 정도를 시험하는 시기인 탓입니다. 추위를 이겨내는 사람만이 봄을 맞게 되는 것이지요. 겨울의 초입에 서서 자연의 이치를 생각합니다.
오늘 광화문에 많은 분들이 모인다고 들었는데 춥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저의 석방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마음을 모아주신 건 단지 저 한 사람의 구명을 위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촛불혁명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이렇게 모이신 것이지요.
한 평 남짓한 독방에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동지들의 덕분이었습니다. 이곳에선 빛나는 별도, 휘영청 밝은 달도, 붉게 타는 노을도 볼 수 없지만 동지들의 소식은 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서 함께 땀을 흘리겠다는 꿈은 제가 가진 희망의 근거입니다.
올 한 해 한반도에는 천지개벽이라고 할 만한 변화가 닥쳐왔습니다. 이 변화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그 폭과 깊이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질 것입니다. 이 변화는 단지 우리의 외적 환경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정치에서도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분단에 기생해왔던 정치세력, 미국만 바라보고 살아온 정치세력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이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거대한 공백이 생겨날 것이고, 이 공백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향후 30년의 우리 사회를 결정할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나 진정한 변화는 민중속에서 시작됩니다. 세계의 민중들은 그 동안 정치계를 주름잡아왔던 지배적 조류를 뒤로 물리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인, 새로운 정치세력이 무대의 중심에 올라서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비슷할 것입니다.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민중의 뜻을 받들어야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정치의 일각을 담당해 온 낡은 세력의 면모 역시 갖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과거의 낡은 면모를 벗고 새 것을 만들어나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진보세력과 개혁세력은 촛불혁명의 완수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적폐세력은 촛불의 분열을 위해 많은 계책을 씁니다.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민주노총 때리기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낡은 세력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작은 차이를 이유로 우리가 갈등할 때 저들에겐 생존의 기회가 생겨납니다. 저들의 이간책을 이겨내고 우리는 한번 잡은 손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합니다. 단결을 이루자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것이 촛불혁명을 만든 원리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평화와 번영,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오직 민중의 힘을 믿고, 촛불의 힘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가장 먼저 촛불을 든 우리는 다시금 가슴속에 촛불을 켜고 낡은 세력을 몰아내고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일궈내야 합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모두 하나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민족의 밝은 미래, 민중의 복된 삶을 일구는 데서 가장 큰 역할을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일구어 나가는 건 우리 민족의 오랜 소망이었습니다. 이 소망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과 만만치 않은 난관이 앞에 놓여 있겠지만 우리에게 좌절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내일을 낙관합니다.
이제 겨울의 초입입니다. 차가운 바람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도리어 단련시키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 겨울이 끝나고 나면 역사의 새봄이 시작될 것입니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그 때 환한 웃음으로 얼싸 안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2018년 12월 8일
수원옥에서
이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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