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자존과 주권을 이야기하는 정치인' 이석기 전 국회의원 :: '최후진술' 태그의 글 목록 (3 Page)

2014.02.07 08:53

[전문]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구속자 최후진술

이상호 수원시 사회적기업지원센터 센터장


감옥이라는 환경의 특수성과 최후진술을 준비하면서 저의 지난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잊고 있었던 뿌리도 더듬어 보게 됩니다.


1985년 군 제대를 수개월 앞두고 제대 이후의 앞길을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시각장애인과 관련된 소책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자에는 당시 맹인촌이라는 표현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서울 남산에 쪽방촌을 형성하여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특히 시간장애인들 대부분이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끼리 만나 결혼하게 되고 부부가 앞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아기들이 태어나 기어 다닐 때쯤부터는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입에 넣을 때라 아기들을 끈으로 묶어 끈 길이만큼의 안전한 공간을 확인한 후 키운다는 가슴 아픈 사연과 이들을 도와주는 봉사자들의 훈훈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당시 이 글을 읽으면서 슬픔과 감동에 많은 눈물을 흘렸고 20대 중반 처음으로 쪽방촌 봉사자들과 같이 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서 제대하자마자 쪽방촌 근처에서 시각장애인과 봉사자들의 매개 역할을 하며 물심양면 지원하던 나눔교회를 찾아가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목사님도 시각장애인인 것을 보면서 더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다녔던 교회 청년부에서는 나눔교회를 돕는 활동을 하였으며 삼성전자에 근무할 당시 관리자들의 횡포에 맞서 만든 모임의 이름을 ‘나눔회’라 지었던 것도 나눔교회 목사님이 보여주신 큰 사랑과 실천을 저도 본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시각장애인들의 사연과 나눔교회 목사님의 삶은 제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27년간 저를 실업과 빈곤의 사회복지활동가로, 노동운동가로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과 함께 오랜 시간 무권리에 놓였던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하던 시기에는 저도 현장에서 함께 노동조합을 건설하였고, 또 노동단체를 통해 노동조합을 지원하였습니다.


97년 IMF로 인해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가정이 해체되고 위기의 가정이 증가하는 시기에는 그들을 돕기 위해 쌀 한되박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여 200가마니를 모아 전달하였고 방치된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열린무료공부방을 개설하여 학습 도움과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실업극복 수원센터를 개설하여 실직자들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취업상담과 일자리 만들기 사업 등을 노동부, 경기도, 수원시와 연계하여 17년간 실업과 빈곤구제 사업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종교단체가 힘을 모아 만든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산하의 경기남부지역 책임 단체로 선정되어 수원, 오산, 화성, 평택, 안성 지역의 위기가정을 지원하였고 경기지역 실업극복단체 협의회장과 (사)전국실업단체연대 이사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2년 전에는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수원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에 임명되었고 수원시를 사회적 경제 선도 지자체로 만들면서 경기도 사회적기업지원센터 협의회장과 경기도 예비 사회적기업 지정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작년에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도지사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실업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사업에 매진하던 중 2013년 1월 저를 미행하던 미상남을 잡아 경찰에 인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이 저를 미행 사찰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왜 미행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국정원의 미행이 폭로되었고 저는 계속 미행해야할 이유가 없었기에 더 이상의 미행은 없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은 빗나갔고 그 후에도 국정원의 미행과 사찰은 지속되었습니다. 국내 공안기관을 대표하는 국정원이 저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고 그 중앙감이 적지 않은데 계속된 사찰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이유로 수원시에서의 사퇴압력이 제기되면서 몸과 마음이 급속히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악몽과 불면증이었습니다. 악몽으로 잠자는 것이 두려웠고 깨고 나면 날이 샐 때까지 긴 밤을 고통 속에 보내야 했습니다. 매일 밤 이어지는 그 고통은 우울감을 키웠으며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할 만큼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혼자 인내해야 했습니다. 이미 가족들도 국정원의 미행과 사찰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시간을 왜 내가 겪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그 끝을 알 수가 없었고 끝을 알 수 없는 공포를 매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더 큰 절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련의 사건이 전쟁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역 언론운동을 하던 지인이 전쟁위기에 따른 예비검속 차원의 미행일 거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그것 외에 국정원이 저를 미행해야 할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2년 전부터 진보단체에서의 역할과 활동을 중단하였고 당시 수원시 산하 기관장으로 사회적경제 사업에 매진하던 때라 공안기관이 저에게 관심과 주목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5월 12일 경기도당 강연회에 참석하여 남부권역 토론 사회를 맡게 되면서 저의 부적절한 발언이 이후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고 동시에 남부권역 책임자가 되어 지금 제가 법정에 있게 된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5.12 경기남부지역 토론회 녹취를 통해서도 확인되듯, 그날의 토론주제는 제가 임의로 변경할 만큼 예비검속에 대한 피해망상이 있었고 그에 따른 흥분과 충동적으로 나온 저의 부적절했던 발언들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참가자들이 저의 과격한 발언에 이견을 갖거나 다른 의견으로 토론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남부권역 책임자라는 주장도 얼마나 무모하고 설득력이 없는 주장인지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제가 국정원 미행을 알게 된 것은 2013년 2월이었지만 국정원은 이미 그 2년 전부터 저에 대한 미행과 도청 등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하였기에 저에 대한 결백과 무혐의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이성윤에 의해 경기남부지역 책임자로 저를 찍고 밀착감시하였지만 이성윤 주장 말고는 그 어떤 증거도 혐의도 입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 하는 것은 조작과 거짓밖에 없기 때문이며 RO는 국정원의 공안적 필요와 매수자의 과잉충성이 결합되어 국정원이 조작해낸 조직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날조와 조작에 의해 제가 희생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다가 8월 28일 국정원에 연행되어 내란음모라는 죄명의 조사를 받으면서 너무 놀랐고 기가 막혔지만 그 혼란함은 오래 가지 않고 곧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 중에 책임을 서로 미루면서 짜깁기된 녹취록을 고의로 유출하였고 마녀사냥식의 여론재판이 해일처럼 정국을 덮치면서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라는 엄청난 부정선거를 단숨에 덮을 수 있었고 커져가던 촛불도 한 순간에 꺼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힘 있는 국가기관들이 자신들이 비리를 덮거나 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시녀로 전락되면 민주주의는 한 순간에 유린되고 국민의 주권 또한 정권의 통치 대상으로 변질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국정원의 오랜 사찰과 내란음모조작 그리고 검찰의 무리한 공소 등 지난 1년의 과정을 겪으면서 공안기관들이 왜 악착같이 진보세력을 종북으로 낙인찍으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부도덕함에 신뢰가 무너져 저의 마음이 닫힌 상태였기에 본 재판 또한 피고인들에게 종북 낙인을 찍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생각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공판이 거듭되면서 저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법은 살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법은 살아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편견 없이 공판을 진행하신 재판장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법은 정의이고 정의는 곧 법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와 원칙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절실한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27년 동안 진보의 가치를 지키고 이웃의 고통과 함께 해오면서 살아온 시간 속에는 저의 그릇보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할 때가 있어 갈등하고 힘들어 했던 시간들도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때마다 저의 작은 정성에 몇 갑절 고마워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또 더 어려운 곳에도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가는 분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저의 길을 중단 없이 갈 수가 있었습니다. 크게 내세울 삶은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해왔던 시간들이 예상하지 못한 구속으로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저의 무죄가 입증되어 저의 걸음이 다시 실업과 빈곤에 고통 받는 이웃으로 향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본인은 지난 3년간 국정원으로부터 지속적인 감청·녹음·미행을 받아 왔습니다. 국정원이 이를 빌미로 온 집을 뒤지며 압수수색하고 구속시켰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 때의 공포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녹음 파일은 검찰에서 내란음모죄 및 이적동조, 국가보안법 범죄자로 몰아세우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본인에게는 괴물처럼 만들어진 죄명을 벗어내기 위한 유일한 근거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동안 녹음파일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오신 것에 대해 재판부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의 최후 진술은 공소장에서 문제 삼는 것과 3인 모임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본인과 관련하여 내란음모 및 이적동조의 근거로 첫째 전쟁대비 3대 지침, 둘째 세포결의대회, 셋째 5.10일 및 5.12일 소집령 하달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소견을 밝히겠습니다.


○첫째, 전쟁대비 3대 지침과 관련하여

검찰에서 제기하는 전쟁대비 3대 지침은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거짓 작명임이 2013년 3월 13일의 녹음파일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검찰은 세 번째 지침 내용을 ‘미군기지 특히 레이더 기지나 전기시설 등 주요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것’ 으로 별개의 내용을 뽑아내어 전쟁대비 3대 지침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당시 녹음 파일에 나오는 세 번째 지침 내용은 ‘모여야 한다’ 는 것입니다. 3가지 지침은 검찰에서 주장하는 RO의 지침이 아닙니다. 3가지 지침은 한국진보연대 2013년 3월 6일자 공문인 ‘한반도 평화수호 비상 행동지침’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한국진보연대 공문은 국가정보원에서 2013년 8월 28일 본인의 주거지 압수수색 당시에 노트북에 있던 130306-전쟁연습내용실천지침.hwp 압수 파일입니다. 설령 검찰의 주장대로 내란음모 관련 RO의 중요한 지침이라면 3가지 지침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역할논의, 지침에 관한 실행계획 등이 함께 논의되는 것이 상식임에도 3인 모임에서는 어떤 논의도 없었습니다.


○둘째, 세포결의대회와 관련하여

검찰은 3인 모임에서 RO의 세포결의대회를 2013년 4월 5일 개최하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모임에서는 ‘세포’라든가 ‘결의대회’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고, 결의대회와 같은 어떤 형식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포결의대회라면 있어야 할 결의사항도 없었고, 각자에 대한 임무나 역할도 없었습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소감 내용 중에 “장군님을 지키는 것이 조국을 지키는 거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라고 영화 대사를 언급한 것을 뒷말을 뚝 잘라 버리고 ‘장군님을 지키는 것이 조국을 지키는 것’ 으로 본인의 생각으로 왜곡시켰습니다. 이날 보았던 월미도 영화도 1~2배속으로 빨리 보려했었고 소감 토론도 9분에 불과합니다. 소감도 북한, 미국, 한국 등의 말투에서 나오듯 내란을 모의하거나 이적동조의 목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소감과 더불어 언급하는 정세관련 내용도 ‘전쟁반대 평화실현’이나 ‘평화협정체결’에 대한 것입니다.


○셋째, 5.10일 및 5.12일 소집령 하달과 관련하여

공소장에 나오는 ‘소집령 하달’이란 단어도 본인과 관련된 녹음파일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말입니다. 녹음파일 35번에도 이석기의원 모시고 정세를 듣는다는 말이 명확하게 나옵니다. 검찰에서는 참가 범위가 ‘조직 생활하는 단위까지’란 것을 들어 RO 조직원들의 비밀회합이라고 몰아가고 있지만 2013년 5월 9일 수원 KT전화국 골목에서 이성윤에게 장소를 전달할 때 “수원 쪽 사람들하고 연락해보고” 란 본인의 말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는 수원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에게 연락해서 같이 올수 있으면 같이 오라는 의미의 말로서 5월 10일 모임이 RO의 비밀회합이 아님이 명확할 것입니다. 2013년 5월 12일에도 이성윤에게 장소를 전달하면서 “동근이가 너한테 연락오며는...내가 알아보라 했거든 그쪽에” 란 말이 있는데 동근이란 실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알아보라고 했던 그쪽의 의미도 수원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리스타 교육관에서의 중서부 권역 발표와 관련해 본인은 두 가지 발언에 대해선 뜬구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검찰은 공소장에서 ‘무장 및 첨단해킹 기술을 이용한 주요시설 타격방안 논의’ 라고 뜬구름이라는 말을 쏙 빼고 정반대의 뜻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3인모임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3인 모임은 검찰 주장처럼 RO 모임이 아닙니다.

첫 만남은 누구나 중요합니다. 본인은 이성윤을 처음 만날 때 누구의 소개 없이 직접 찾아가 만났습니다. 한동근도 당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직접 제안했습니다. 3인 모두 경희대 학생운동권 출신 선후배라는 것과 통합진보당 열성당원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도 합니다. 3인이 첫 모임에서 나눴던 대화는 ‘모임을 팀으로 한다는 것’ 으로 당시의 팀의 성격은 당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3인 모임은 당 상황 공유가 주된 대화였고, 당 상황이 정리되면서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신청 준비와 관련한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검찰에서 주장하는 RO모임이라면 첫 모임에서 서로간의 조직명이나 각자 임무가 무엇인지 정도는 공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밝히지만 3인 모임은 본인이 직접 두 사람에게 제안하여 만들어진 모임이고 각자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져왔습니다.


○ 둘째, 3인 모임 약속과 관련하여

검찰은 RO 세포원들은 모임 후에는 반드시 다음 약속을 정하며 이는 전화 · 이메일 등으로 하지 않는 보위수칙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3인 모임 21번을 살펴보면 녹음파일 25번, 27번에서는 차기 약속도 잡지 않고 있으며, 녹음파일 22번, 24번, 29번, 35번, 40번, 42번 에서는 다음 모임의 일정과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3인 모임은 약속 변경이 자주 있으며 필요하면 핸드폰으로 쉽게 약속을 변경합니다. 또한 같은 장소도 여러 번 사용하고 있으며 서로간의 교통편이 편한 곳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모임 시간도 주로 점심을 함께 먹으며 만났으며 녹음파일 19번, 20번, 22번, 24번, 27번, 30번, 40번, 42번, 44번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셋째, 3인 모임 사상학습과 관련하여

검찰은 공소장에서 사상학습을 통한 찬양·동조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3인모임에서 북한 자료를 가지고 길게 소감을 나눈 것은 26분 37초이며 짧은 소감은 4분에 불과합니다. 녹음파일 28번에서는 공유한 자료는 많았지만 서로의 소감에 나오는 자료의 언급은 거의 없었습니다. 녹음파일 34번에서는 주요내용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는 언급만 있고 서로의 소감은 전혀 없습니다. 또한 3인 모임 소감 토론의 많은 내용은 북한 자료와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제기하는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동조의 목적을 갖고 소감 토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감 토론은 어떤 강제성이나 규율이 전혀 없이 자유롭게 이뤄졌습니다. 이성윤이 진술한 사상학습처럼 북 자료에 대해 각자가 역할을 맡아 주요내용 발췌, 주제별 토의, 질의응답, 과제도출, 결의나 결정 등이 전혀 없었습니다.


○넷째, 총화서 관련하여

검찰은 공소장에서 RO는 개인·조직단위별로 분기총화(3.6.9월경) 및 연말총화(11월경)를 실시한다고 제기하고 있고, 이성윤은 조직모임에서 개인별 총화서를 발표한 후 서로 회람하고 질문 토론을 진행한 후 말미에 사업결의를 하는 순으로 진행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3인 모임에서는 총화 관련해서 단 한 차례도 토론하지 않았으며 2013년 3월과 6월에도 총화 관련해서 작성도 하지 않았고 구두 토론도 없었습니다.


○다섯째, 회비와 관련하여

검찰은 3인 모임에서 회비가 언급될 때마다 RO의 재정방조 의무라고 강조하는데 우리는 3만원의 회비를 자율적으로 걷어 여러 경비로 사용했습니다. 회비 언급에 대해서는 2012년 9월에는 3번의 모임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2012년 10월에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2013년 1월에는 2번의 모임에서 언급하였고 다시 2013년 5월에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2013년 6월에는 2번의 모임에서 언급하고 7월에도 2번의 모임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회비를 자주 언급하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회비가 매월 정기적으로 걷히지 않아 모임 경비를 돌아가면서 부담한 것이 사실이지만 녹음파일 24번, 42번에서 나타나듯 회비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3인모임은 RO의 세포모임이라는 이름을 붙일 모임이 아닙니다. 3인 모임 어디에서도 조직명칭, 조직목적, 강령, 규약, 임무역할 등 조직모임과 관련한 언급이 없으며, 두 사람이 직책을 맡는 과정에서도 본인이 지침을 주지도 않았고, 두 사람의 역할과 관련해서도 어떤 지침을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다음은 본인의 압수목록 중 이적표현물이라고 제기하는 철학강의.txt 파일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파일은 주요내용이 마르크스 경제학 체계, 철학의 사명, 동서양의 철학적 중심, 막스 레닌주의 체계, 사람중심의 철학체계, 북한 헌법 3조 소개로 각 철학체계를 요약한 것입니다. 북한 헌법이라는 표현에서도 나타나듯이 이적표현으로서의 의도가 전혀 없이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인에게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8세와 사춘기에 접어드는 13세의 두 딸이 있습니다. 본인은 그동안 가장으로서 이렇다 할 책임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두 딸에게 성실한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최후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동근 수원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


먼저, 내란음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하시는 재판부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재판부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80년대 군부독재에 대항한 격동의 시대를 겪으면서 혼자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기보다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해온 사람입니다. 또한 마흔이 넘어서야 아들을 얻어 늦깎이 아빠로서 아들 재롱에 푹 빠져 있는 평범한 중년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지역에서는 의료와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모색하는 이 사회의 버팀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의 힘으로 건강을 지키고 건강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의 건강지킴이가 되어 줄 공동체를 꿈꾸며 지난 5년간 밤낮없이 헌신해 왔습니다. 매월 발생하는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웃들이 의료협동조합을 통해 건강이 증진되는 모습을 보며 커다란 자긍심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연간 600여명의 취약계층이 의료협동조합의 서비스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환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모든 진료활동이 투명하며 돈벌이가 아닌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신념으로 여기고, 치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지역주민이 주인인 의료기관을 만들기 위해 뛰어다녔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어렵고 힘든 점이 더 많지만 건강을 위한 소중한 새싹을 키워내는 심정으로 헌신해 왔습니다.


또한 저는 통합진보당의 당원이기도 합니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주인으로 대접받는 사회를 진보정당을 통해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당직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진성당원으로서 진보당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지역에서 당원들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2013년 8월28일, 80년대에나 들어보았던 ‘폭력혁명’ 이니 ‘무장폭동’이니 하는 말을 앞세운 ‘내란음모’ 혐의는 저와 가족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이고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나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노태우의 내란음모는 들어봤어도 2013년 인터넷 시대에 일상 활동을 하는 평범한 개인에게 내란음모로 잡아 가둘 줄은 상상도 못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구속 후 언론과 공안세력은 종북마녀사냥의 광기어린 목소리를 연일 쏟아내었으며, 재판도 시작되기 전에 종북주의자로 내란음모자로 낙인 찍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진보당을 제외한 그 누구도 객관적인 진실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셨던 연로하신 어머니는 아예 전화기를 꺼놓으시고 문 밖 출입을 금하셨으며, 어린 아들과 둘뿐이었던 아내는 집 앞에 낯선 사람이 서성이면 후미진 곳으로 피해다니는 공포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고통은 가족뿐이 아니었습니다.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관계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실사와 간섭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지역사회 진료활동은 축소되고 2012년부터 어렵게 개척해 온 간호보육사업이 잠정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함께 동고동락해온 취약계층 직원 5명이 의료협동조합을 떠나야 했으며 대표인 저로서는 손발이 묶여있는 상태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검찰의 소환조사등으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동조합 사업에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재판을 통해 실체적인 진실이 밝혀져 이번 사건으로 고통 받았던 많은 이들이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27년지기 친구였던 소위 국정원 협조자라 칭했던 이성윤을 사건이후 처음으로 차양막 너머 음성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시절 함께 울고 웃던 친구가 온갖 거짓과 음모로 덧씌워진 주장을 아무 거리낌 없이 각본대로 되풀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을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3년간 국정원은 이성윤을 이용하여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격의 없이 사적으로 나누었던 대화부터 진보당의 공식행사, 선거대책행사 등 가리지 않고 국정원은 이성윤을 이용하여 국정원에서 제공한 녹음기로 모두를 녹음하게 하였습니다. 제출된 녹음파일만 무려 3년간 70시간이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협동조합 직원 이야기, 부모님과 아이들 이야기, 심지어는 부부 싸움하여 어려웠던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대화까지도 서슴지 않고 녹음하여 국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녹음된 파일을 국정원에 전달하기 위해 국정원 직원을 최소 150회 이상 만났으며 만날 때마다 20여 만원의 활동비를 받아왔다는 사실도 재판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40대말에서 50대로 접어드는 중년의 선후배들이 모여 격의 없이 나누었던 대화가 하루아침에 지하혁명조직의 세포모임으로 왜곡되어 재판정에서 녹음된 음성 모두가 공개되면서 개인의 인권이 국정원에 의해서 발가벗겨지는 심정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붉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붉게 보이듯 국정원과 검찰은 모든 대화내용을 국정원 협조자인 이성윤의 진술만을 근거로 RO 지하혁명 조직의 5대 의무에 따른 활동으로 상상하여 주장하였습니다.


당뇨로 고통 받고 있던 후배걱정에 만날 때마다 건강상태를 묻곤 했던 선배의 진정성은 지하혁명 조직의 세포보고를 위한 활동으로 왜곡되었으며, 지역에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기 위해 설립절차나 운영 사례 등을 나누었던 대화는 지하혁명조직의 분공수행의무를 위한 활동으로 검찰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카페에서 만나 1시간30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진보당을 비롯한 지역사업,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영상이나 문건과 관련하여 3분정도 소감을 나누었던 대화는 지하혁명조직의 사상학습의무로써 북한을 찬양, 동조한 결정적인 근거로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검찰은 국정원 협조자인 이성윤의 진술이 마녀사냥의 표식인 양 붉은 안경을 쓰고 모든 일상생활과 활동을 지하혁명조직 RO의 그림표에 맞춰 가공하고 왜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3월 한반도 정세는 누구나가 알고 있었듯이 전쟁위기가 고조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정세에 맞서 진보당을 비롯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한 비상시국회의라는 광범위한 연대조직을 구성하면서 평화실현 캠페인을 대중적으로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회원이면 누구라도 알고 있었던 비상시국회의구성, 대중캠페인 전개, 비상시모임 등 진보진영의 일반적인 행동지침을 검찰은 지하혁명조직의 ‘전쟁대비 3대 지침’ 하달로 과장, 왜곡하면서 내란음모를 위한 결정적인 근거로 주장하고 있으나, 녹음된 음성을 통해 드러났듯이 전쟁대비 2대지침은 있지도 않았으며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어떠한 준비나 계획, 실행행동 등이 전혀 없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국정원과 검찰이 사실을 교묘하게 조작한 것이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검찰은 본인이 비상시 3대 지침을 하달 받으면서 수원 광교산레이더기지, 비행장 등 실재사실을 언급하였다고 주장하며 ‘수원 광교산 미군레이더기지’ 입증자료로 방대한 수사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광교산 미군통신대대 운영사실, 시설파괴 시 전후방 부대간 대규모 통신교란으로 인해 작전수행이 불가해지는 중요시설이라며, 광교산 레이더기지를 언급한 것이 전쟁대비 3대 지침에 따라 내란음모를 준비하기 위한 증거인 양 과장하고 왜곡하였으며 온갖 인터넷 자료와 항공지도를 첨부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광교산 레이더, 미군기지 발언은 국정원 협조자인 이성윤이 의도적으로 발언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국정원과 검찰은 저에게 내란음모의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제가 발언한 것처럼 녹취록에 이름을 바꿔치기한 사실이 녹음된 음성을 통해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홈페이지 개편을 위해 적어놓았던 ‘한국정보화진흥원’메모를 ‘RO 지침에 따른 국가정보통신망 정보수집 활동’이라 주장하며 휴대폰 통신내역, 기지국 정보등을 제시하였으나 당일 아들과 함께 관람한 연극정보와 아내가 보관하고 있던 여행 가방을 구매한 백화점 영수증으로 국정원이 주장한 내란음모 혐의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녹취록의 왜곡은 전반적인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저의 녹취록 발언을 제시하며 내란음모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본인의 발언 일부를 생략하거나 발언의 앞뒤를 자르고 진의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실제적 무기를 예비할 게 없다’는 의견을 ‘무장을 하자’는 주장으로, ‘탈취나 무장은 다른 문제이므로 전쟁반대 평화활동에 임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파출소 탈취’ ‘무장’으로 왜곡하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소장에서 제시된 저의 녹취록은 전체적으로 진의를 왜곡한 편집된 주장이었음이 녹음 음성 청취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를 비롯한 진보세력은 평화주의자들입니다. 전쟁을 막아 나서는 자들입니다. 전쟁 없는 평화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평화애호를 신념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부당한 권력과 독재정권에 대항할 수는 있으나 전쟁 상황을 용납하지는 않습니다. 한반도에 그 어떠한 전쟁도 반대하며, 위기가 조성되면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해 온몸을 내던져 싸울 사람들이 진보세력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간다면, 미약한 힘이지만 건강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이웃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더욱 헌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의 가치가 지역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삶에 더욱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한반도에 전쟁위협이 사라지고 평화가 실현되는 날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바쳐가며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며 이만 제 진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저는 이번 사건으로 구속과 재판으로 이어지기까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이 사건은 "도둑이 매를 든 사건"입니다. 국정원은 자신들의 대선불법개입을 은폐하기 위해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했습니다.


이번 '내란음모'조작사건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저뿐만 아니라 저의 가족, 친지, 그리고 우리 진보당의 당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8.28일 사건 당일 국정원이 제시한 압수수색영장을 보고 믿어지지 않아서 한참을 들여다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납니다. "내란음모? 이게 뭐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석기 의원님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과 구속집행은 지난 2012년에 이어 더 높은 강도의 당 탄압이었습니다. 내란음모를 조작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경기도당의 5월 정세강연회가 3개월이 지나 8월말에 '내란음모'사건으로 조작되었습니다. 검찰은 진보당 당원 100여 명이 모여 내란을 준비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강연회 참가자 중 과반수는 여성이고 군사적 지식이 있는 사람도 없고 무장력도 없는 사람들이 내란을 준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신예 무기로 무장한 60만 대군이 있고 경찰, 예비군, 국가비상체계가 이중 삼중으로 존재하는데 민간인 100여 명이 모여 내란이 가능하다고 검찰은 주장하는데 과연 이게 정상적인 주장인지 모르겠습니다. 검찰은 진보당원들을 특별한 세상물정 모르는 맹동주의자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세강연에 참여한 당원들은 검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맹동주의자들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일해 온 사람들로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 강연 참석자들은 20-30년 진보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와 집권을 바라보고 지난 10여년 동안 진보당 활동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2년 혹독한 당 탄압을 이겨내고 당을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내란음모'는 국정원과 공안검찰의 주관적 망상에서 나온 결과물로 보입니다.


검찰은 공소장에 (주)CNP그룹이 RO의 재정, 기획 분야를 담당한다고 규정하였고 저를 CNP총괄책임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존의 CNP전략그룹은 4개 회사로 분사하여 각자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중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일 뿐입니다. 또한 주식회사 CNP그룹은 2012년 3월에 교육 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한 새 법인회사인데 사업을 진척시키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스스로 주장한 CNP그룹이 RO의 재정사업이라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찾지 못하였고 재판과정에도 한번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기획 분야 담당이라는 것도 그 어디에도 입증된 바 없고 기획 분야 담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말인데 공소장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석기 의원님은 의원이 되기 전에 CNP대표이셨습니다. 기업의 대표가 기업을 떠나도 직원들에게는 대표인 것입니다. '대표'라는 호칭이 어느 날 갑자기 RO의 대표로 변질되어 이 자리에서 중요한 근거로 되는 것에 대해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이석기 의원님은 CNP회사의 창업자이십니다. 10여년 동안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일군 사람입니다. 직원들이 창업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데 이를 RO의 활동으로 규정하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저는 지난 2012년 6월 회사의 압수수색 이후 줄곧 국정원에 사찰당해왔습니다. 2012년 10월부터 국정원의 사찰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구속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사찰당하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직원들과 식당에 가는데 미행을 해서 우리 직원이 영상으로 녹화를 하면서 쫓아가자 당황해서인지 항의도 하지 않고 수백미터를 도망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개인이 거대조직인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에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모든 신경이 곤두서고 생활에서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고 어디론가 피하고 싶은 것이 현실입니다. 압박감 때문에 잠 못 이룰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번 이상호 센터장의 진술에 100% 공감하였습니다.


국정원의 사찰이 영장발부 이전부터 있었고 통신제한조치 영장을 발부한 지 10개월 동안 저를 사찰하였지만 그 어느 하나 영장에서 제시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국정원의 사찰로 개인의 생활은 황폐하게 되고 불안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생활을 1년 가까이 해왔습니다. 사찰은 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의 가족의 생활조차도 철저히 비정상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의 처는 차에 블랙박스를 달고 집안에 CCTV 설치를 하자고 하기도 하고 집주변을 항상 돌아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이겠습니까? 10개월 넘게 사찰당한 사람들의 모습은 이럴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불안한 상태에서 저의 가정, 회사생활은 긴장되고 보안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태로 되었고 보안프로그램 이중 삼중이 문제가 아니라 10중이라도 할 수 있다면 했을 것입니다.


국정원은 저에 대한 사찰과 당에 대한 사찰을 긴시간 자행해 왔습니다. 이는 개인과 정당에 대한 탄압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민주사회에서 더이상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되고 이번에 단죄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지난 30년 넘게 진보운동에 몸담아 온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진실이 이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가 진실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판이 되길 바라면서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회와 격리되어 사랑하는 가족을 비롯한 당원동료들과 떨어진 채 한 평도 안 되는 감옥에 수개월씩이나 갇혀 있어야 하는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문제의 5월10일과 5월12일의 자리는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이 주최하여 개최한 행사였습니다. 이석기 의원님을 강사로 초빙하여 경기도당 전현직 간부들과 열성당원이 참여하여 진행된 ‘반전평화 정세강연회’였습니다.


지난해 2013년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해의 3월과 4월은 북한핵문제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둘러싸고 이해 당사자들의 충돌이 심각하게 격화되어 한반도의 정세가 최악의 전쟁위기 국면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2013년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당시 조성된 정세의 특성으로 하여 그 어느 때보다 짙게 드리워진 전쟁의 먹구름을 제거하고 평화와 안정을 실현코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사회의 요구를 실현하는 것을 자기 의무로 하고 있는 진보주의자의 선택은 마땅히 평화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은 ‘전쟁반대! 평화실현!’ 이라는 가치를 높이 들고 ‘1인시위’, ‘서명운동’, ‘캠페인’ 등의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여 60년 정전체제로부터 야기되어 왔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의 악순환을 끊고 평화체제로의 해로운 기대를 맞이하기 위한 고민이 함께 하였습니다.


5월10일과 5월12일 ‘반전평화 정세강연회’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반전평화운동’을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데 기여하고자 마련한 자리였음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월10일과 5월12일의 ‘반전평화 정세강연회’를 두고 ‘내란음모’니 ‘내란선동’이니 하는 것은 부당하며 터무니없는 궤변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란’이란 말 자체를 알지도 못하거니와 한 번도 생각하거나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저의 머리에는 내란의 ‘내’자조차 기억에서 마저도 없는 말입니다.


사회를 보다보면 강연의 취지를 전달하고 결의를 높여내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발언을 하게 됩니다. 이때에는 대개 짧은 시간에 간단한 말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 표현이 과장되기도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5월10일과 5월12일 모두 이러한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반미대결전입니다. 이는 전시작전권이 미국에게 있는 조건에서 한반도 평화의 문제가 남북한의 문제를 넘어 미국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의 당사자로써 한반도 평화에 있어 미국의 역할과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외에도 ’제네바 합의‘라든가 ’9.19 공동성명‘이라든가 한반도 평화를 둘러싸고 맺어진 북한과 미국사이의 여러 가지 합의서와 공동성명은 한반도 평화에 있어 미국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전시토론’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전쟁위기’상황을 빗대어 말한 것인데 마치 ‘전쟁이 일어난 상황’으로 오인하여 토론할 수 있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으로 됩니다. 이러한 발언으로 하여 분반토론에서 의도치 않는 과력한 발언이 나온 것 같아 재판과정 내내 답답함과 함께 마음이 무겁기도 하였습니다.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으로 초래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상황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질서와 체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고민을 함께 나누자고 한 것이 본래의 취지이자 의도였습니다.

 

 

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최소한의 인권과 생활권이 보장되고 권력과 자본의 횡포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받으며 동등한 주권국민으로 살기를 원하며 그 길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80년 광주에서 자행되었던 군인들의 학살을 보며 받았던 충격과 분노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꿈 많았던 청춘을 정의롭지 못한 학살정권에 맞서는 길로 뛰어 들었고, 그 과정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부끄럽거나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결국 독재정권을 심판하였으며 민주주의와 통일을 향한 역사의 흐름은 이후에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결혼과 더불어 하남에 정착하여 30~40대 젊음을 다 바치며 ‘지구의 중심은 지역이다’ 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청년운동, 시민운동, 환경운동, 정당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였고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소위 빨갱이로 매도당하며 이념논쟁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순수성을 의심받기도 했으며, 거대한 권력과 자본의 기득권 앞에 적수공권으로 맞서는 것의 한계를 절감하며 상심하기도 했고, 가장으로서 어깨를 누르는 사회적·경제적 책임감에 막막한 적도 있었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하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것에 가슴앓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진보의 한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IMF 한파가 몰아닥친 1997년은 유독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피해가 심했던 건설일용노동자들과 함께 노조를 만들어 일자리 알선 및 창출 그리고 현장에서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력했던 시절을 잊지 못합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로부터 15년이 넘도록 동고동락하며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 그 분들의 모습은 제 삶의 커다란 자부심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어려운 가정, 결손가정,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을 위해 뜻을 모아 만들고 사랑과 정성으로 운영하는 방과 후 학교가 있습니다. 초창기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잘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고 자신이 다니던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에서 그 대견함에 잔잔한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학교 급식실 아줌마에서 당당한 노동자가 되어 교육 주체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의 모습, 열악한 조건의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덤프트럭, 굴삭기 등 건설 중장비 기사들이 노조를 결성하여 자신들의 권리 찾기에 나서는 모습, 그 외 사회양극화의 칼바람 속에 노동의 기본권과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 ·서민들의 모습을 이 땅에서 진보운동·진보정당이 왜 필요한지, 내가 왜 그 길을 가야하는지를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에 묻혀 지내던 시민들이 지역의 주인으로 자각하고 나서게 되는 과정을 사람이 희망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지자체장의 무책임하고 인기영합에 편승하여 낭비한 축제예산을 되찾기 위해 제기한 186억 환수 주민소송, 지역의 아파트 건설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아파트 분양가 공개를 요구한 주민감사청구, 단체장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광역화장장 유치에 맞서 1년 6개월 동안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저항하며 승리한 주민소환 운동 등은 시민들의 자각적언 참여가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시민의 힘은 시민들이나 정치로 모두에게 소통하고 논의하고 합의하는 선진적인 정치문화가 하남에서 뿌리내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일상에서 부딪히고 호흡하는 자그마한 실천들은 정치의 참의미를 깨우치게 해주었습니다. 하남을 찾는 겨울철새 ‘고니’를 공부하고 보호하기 위해 엄동설한의 추위를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 친환경 주말농장을 일구며 땀방울을 흘리고 이웃 간의 경계를 허물며 작은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 바른 먹거리와 환경문제에 피해 자각하고 깨달으며 우리 것을 지키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과 생활자세를 갖는 사람들, 극단으로 치닫고 벼랑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며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은 현실을 이겨내는 역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희망을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진보집권의 꿈을 실현해 나갔기에 시련과 난관을 이겨낼 수 있었고, 더디지만 목표를 행해 한발 한발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겪으며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집, 평생교육원, 의제 사무실이 있는 하남시청에 동시에 전경버스까지 동원하여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압수수색으로 주거지 주변 주민들과 공무원 사회 등 하남시 전체에 순식간에 부정적인 여론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언론을 통한 왜곡된 녹취록 공개와 저와 연관되었다고 주장하며 진행한 10여개 단체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 RO의 자금줄 운운하며 위 단체들에게 가해진 감사원과 검찰의 회계자료 조사 등은 사실여부를 떠나 이미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것인 양 인식되어버렸습니다. 저의 구속과 맞물려 저를 비롯한 지역의 진보세력 및 진보당은 감당하기 힘든 정치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진보세력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적대감이 빚어낸 정치탄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너희들은 대한민국의 적대세력이니 이 나라를 떠나라는 극단적인 의미로 다가옵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과 공안기관, 보수언론의 전유물이 아니며, 보수와 진보, 집권당과 야당, 다수당과 소수당을 넘어서 이 땅의 주인인 5천만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어느 조직이든지, 하다못해 가정에서도 가족 간에 생각이 다르고 이견이 있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며, 이 차이를 존경하고 소통하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을 위한 행복은 남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세는 모든 정치세력이, 특히 박근혜 정권이 꼭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분명히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내란음모는 없었습니다. 다만, 박근혜 정권과 다른 정치적 견해가 있었을 뿐입니다. 서로의 ‘다름’과 ‘차이’가 존중되고, 이것으로 인해 불이익이 있거나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제 삶의 과정에서 다소 부족하거나 미흡한 면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향후 개선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진보의 가치가 훼손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재판부가 공정하고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리며 잠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진보집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회를 하루빨리 갖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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