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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과 옥중메시지

2020년 추석한마당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운 동지들!

옥중에서 여덟 번째 맞이하는 가을입니다. 긴 장마와 폭염을 겪고 난 뒤 바라보는 가을 하늘은 여느 해보다 더 푸르게 느껴집니다.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옥담 문화제를 이번에도 어김없이 개최하기 위하여 경향각지에서 동지들이 달려온다는 소식을 반가움과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코로나는 수인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번 연휴 기간에는 나흘동안 접견도 면회도 금지되어 묵언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미리 많은 분들이 편지를 보낸 것이지요? 평소 편지를 안 보냈던 분들도 손편지를 보내 주셨는데, 편지 쓰는 모습이 그려져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났습니다. 이번 연휴 기간 선물상자 펼쳐보듯 한 분 한 분 편지를 쓴 그 눈으로 읽고 마음의 결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1년에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에 운이 좋으면 보름달을 볼 수 있었던 수원옥과 달리 이곳에서는 달을 볼 수 없습니다. 석양의 붉은 노을을 못 본 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달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달을 보내 왔어요. 옥중 8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미소를 잃지 않고 낙관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변함없이 한 없는 사랑과 믿음을 보내 준 동지들 덕이었습니다.

오늘처럼 눈부신 햇살과 투명한 바람이 불 때 푸르게 빛나는 하늘을 보면, 저 하늘처럼 민중을 위해 살고자 했던 청년시절의 첫 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련의 고비마다 맑은 각성으로 새 힘을 넣어주는 분들의 그리운 얼굴이 떠오릅니다.

대전환기에 정세는 역동적이며, 적지않은 애로와 난관은 예상되지만 내일의 전망은 밝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전국에서 한걸음으로 달려 온 여러분, 지금 이 시간 각 현장에서, 지역에서 함께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 마음이 내 마음입니다.

더 큰 ‘나’인 동지들께 뜨거운 마음 담아 경례(敬禮).

 

2020. 9. 대전옥에서  이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