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봄입니다. 얼마 전 평양에서 남측의 예술단이 올라가 펼친 공연의 제목이 ‘봄이 온다’였다고 들었습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감옥에서도 봄은 옵니다. 무엇보다 변화하는 정치 상황은 올해의 봄이 우리 역사에서 커다란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예감을 줍니다.
올해 초 북측의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한 이래 불과 몇 달 만에 세상은 크게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북미의 정상이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크게 ‘멋지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냥 좋은 일도 아니고, 다행한 일도 아니고 그야말로 멋진 일입니다.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내내 옥죄왔던 분단체제가 이제 용틀임을 치는데 그걸 볼 수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저는 국회의원 시절 ‘남북중미’ 정상의 4자회담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이런 제안을 한다는 건 무모해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이미 한반도의 땅 밑에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민중의 힘이 폭발해 그 걸림돌을 제거하고 나니 이제 변화는 눈앞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작년까지의 전쟁위기는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를 남북의 민중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는, 새로운 한반도에 대한 상상을 합니다. 남과 북이 만나면, 북과 미국이 만나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것은 단순히 아픈 과거를 청산하거나 오랜 적대를 해소하는 수준을 뛰어 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도 당연히 이뤄내야겠지만 그런 형식을 넘어 근본적인 변화를 상상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북미 사이의 적대가 해소되는 건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세계가 커다란 변화를 겪을 때 우리 민족은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남북이 서로 손을 잡고 한반도에 드리운 낡은 족쇄를 깨부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은 평화와 자주라는 가치에는 얼마든지 뜻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미국도 있고 중국도 있고 일본도 있고 러시아도 있지만 이들 강대국들의 패권 추구 성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평화’와 ‘자주’의 가치를 내세워야 합니다.
민족 내부의 갈등은 그것대로 진보의 동력으로 바꾸면서, 우리 민족만이 내면화할 수 있는 가치를 앞세워 동북아를 주름잡아 보자는 것입니다.
1960년의 4월혁명이 그러했듯 억압을 물리친 우리 민중은 민족의 통일로 향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독재를 물리친 우리가 올해 들어 민족문제의 근본적 해결로 나아가는 것은 역사의 순리라고 할 것입니다.
다만 시작된 혁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자면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 역시 4월혁명의 교훈입니다. 비록 갇힌 몸이지만 그 과정에 몰두하고자 합니다. 우리 민중의 역량을 아래로부터 더욱 키우는 일입니다. 감옥 안에 있건 바깥에 있건 우리는 하나입니다.
민중을 위하여 복무하겠다는 마음만 컸지 특별히 내세울 만 한 공은 없고 5년째 징역만 살고 있음에도 ‘사월혁명상’을 안겨주신데 깊이 감사드리며 사월혁명회 정동익 의장님과 모든 성원들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나가서 뵐 때까지 모두 몸 건강하시고 또 승리하십시오!
2018. 4. 11 수원옥에서
이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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