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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에게 자유를

진보당 해산심판 최종변론 - 조지훈 변호사

o 첫째, ‘내란음모 사건’이 언론에 공개될 때인 2013. 8. 28.을 되돌아봅니다. 2013년 여름은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의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봄부터 시작된 촛불의 열기는 8월 한 달 동안 서울에서 3만 명에서 4만 명이 참여하는 범국민대회가 여섯 차례나 열리면서 정점에 다다랐습니다. 촛불의 방향 또한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내란음모 사건’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2013. 5.에 있었던 정세강연회는 무려 석 달 보름이나 지난 후에 비밀지하혁명조직 ‘RO’의 무시무시한 ‘내란음모행위’로 둔갑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선개입에 대한 국민들의 규탄요구를 일시에 삼켜버렸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피청구인에 대한 이 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에까지 이르렀음은 청구인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o 둘째, 공안당국에 의한 철저한 기획과 미디어를 이용한 조작이 있었습니다. 사건 초기에 이미 ‘지하혁명조직 RO에 의한 내란음모’,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내란정당’이라는 이미지는 여론재판에 의해 기정사실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국정원 협조자로서 3년 간 비밀리에 활약한 이성윤은 5. 12. 마리스타교육수사회에서 있었던 강연자 및 참석자들의 발언을 그들의 동의 없이 비밀 녹음하여 국정원에 갖다 주었습니다. 국정원은 5. 12. 마리스타수도회에서 있었던 모든 발언 내용을 바로 그 다음날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를 확인하고도 주요국가시설에 어떠한 보안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성윤은 국정원으로부터 활동비와 녹음기를 지급받아 3년 동안이나 대학동문 선·후배들과의 대화내용을 녹음했습니다. 그러나 이성윤 조차도 언론에 공개되기 전까지 ‘내란음모’로 기소될 줄은 몰랐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란음모’라는 네 글자의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파괴력과, 발언내용을 왜곡·편집한 녹취록이 연일 보도되었습니다. 이미 ‘내란음모 사건’의 피고인들은 ‘유죄’를 사실상 언도받았습니다. 그 가족들은 ‘간첩, 빨갱이’의 처와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소속한 정당은 ‘내란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들씌워졌습니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고문에 의한 물리적 폭력으로 사건이 조작되었다면, 현재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서는 발달된 미디어를 이용한 이미지의 상징화로 ‘내란음모 사건’이 조작된 것입니다.

 

o 셋째, 이른바 ‘내란음모’ 혐의에 관한 실체가 밝혀지기까지 1년이 걸렸습니다. “해외 자금책, 유로화를 RO의 혁명자금으로 송금”, “북 접촉 RO조직원, 정찰총국 225국 연계의혹”, “RO조직원들 북 잠수함 지원방안 준비 이메일 교환”... 사건 초기인 2013. 8.말부터 9.초까지 언론에 도배가 되었던 신문기사 제목들입니다. 그러나 내란음모 등 사건에서 북한과 연계된 자료는 단 하나도 증거로 제출된 적이 없습니다. 나아가 청구인이 피청구인의 ‘핵심세력’으로 규정한 이른바 지하혁명조직 ‘RO’는 존재하지 않음이 확인되었습니다. 5. 12. 회합에서 내란범죄 실행을 위한 합의가 없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청구인의 핵심적 근거인 ‘RO’와 ‘내란음모’는 이렇듯 그 기초에서부터 부정되었습니다. 이번 정당해산심판청구는 청구인의 주장자체로 그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청구인이 ‘RO’를 근거로 제기하는 그 어떠한 주장도 이 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의 사유에 해당될 수 없습니다.

 

o 넷째, ‘민혁당 잔존세력’이니 ‘범경기동부연합’이니 하는 것은 청구인이 명명한 ‘이름’일 뿐입니다. 청구인은 지하혁명조직 ‘RO’를 전제로 피청구인의 중심세력이 ‘민혁당 잔존세력’, ‘범경기동부연합’이 장악했다고 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세력의 실체’를 주장합니다. 청구인은 이를 뒷받침한다면서 김영환의 진술과 일부 사람들의 국가보안법 처벌 전력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15년 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일일 뿐이고, 사실관계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즉 현재의 객관적이고 실체적 사실관계를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2012년 분당사태 때 탈당하지 않은 것 자체가 ‘범경기동부연합’이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합니다. ‘RO’라는 지하혁명조직의 실체 자체도 가설인데, 청구인은 이를 전제로 ‘민혁당 잔존세력’, ‘범경기동부연합’이라는 또 다른 가설적인 세력을 창조해 내었습니다. 청구인은 여전히 ‘RO’가 피청구인의 핵심세력이라고 합니다. 이는 ‘영화 인셉션’의 꿈 속의 꿈 속의 꿈 처럼, 가설의 가설의 가설입니다. 이와 같이 청구인의 주장은 3단계 가설론과 ‘순환논리’가 만들어 낸 완벽한 허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o 다섯째, ‘내란음모 등 사건’의 항소심 판결에서 피고인 이석기, 김홍열에 대한 내란선동죄가 유죄로 인정되었다고 해서, ‘내란선동행위’가 이 사건 심판청구의 사유로 될 수는 없습니다. 5. 12. 회합에서의 이석기 의원의 강연내용은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촉구’가 아닌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태도와 관점’이 주제였습니다. ‘선동죄’의 성립요건을 ‘개연성’만으로 판단한 항소심의 법리에도 잘못이 있습니다. 더욱이 개별적 인사의 정세강연에서의 발언내용은 피청구인 자체의 기본 목적이나 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청구인의 주장대로라면, 결의된 사항은 백퍼센트 집행하는 규율을 가진 지하혁명조직의 수괴가 폭동행위를 선동했다는 것인데, 그 어떤 사람들로부터도 계획서 한 장이라도 받았다던가, 무기 구입 등을 하는 등 폭동에 필요한 어떠한 행위도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당시 참석자들이 그날 강연을 내란음모 또는 내란선동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구인이 ‘RO’의 세포모임이라고 규정하는 3인 모임에서도 5. 12. 이후 내란 준비를 위한 논의는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결국 5. 12. 회합에 참석한 그 어느 누구도 ‘폭동’을 위해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인 사실이 없습니다.

 

o 여섯째로, ‘전민항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청구인은 피청구인에게 숨겨진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폭력혁명, 전민항쟁 노선이며, 이는 5. 12. 발언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민승리21’ 시절부터 진보후보로 공직선거에 출마해 온 피청구인 소속의 수많은 당원들의 현실적 노력이 어떠한지를 전혀 모르는, 선거의 문외한인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거대 정당들은 당내 공천을 받기 위하여 시쳇말로 권력과 돈을 총동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나, 피청구인과 같이 소수정당, 진보정당 소속으로 공직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그 과정 자체가 고단한 삶의 연속입니다. 선거비용을 보전 받을 수 없을 정도의 지지율이 예상되는 조건에서도 후보자기탁금을 부담해야 합니다. 주위에서는 왜 굳이 그런 가능성 없는 당에서 출마를 하냐고 질타합니다. 이왕 정치를 할거라면 거대 야당 후보로 출마하라고 권유를 합니다. 사람은 좋은데 당의 힘이 약하다며 안타까움도 표시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소신이 피청구인의 강령과 정책에 일치하기 때문에 어려운 조건에서도 출마를 하고, 피청구인들의 당원들은 이들의 당선 또는 최대한의 득표를 위해 선거운동을 합니다. 유권자 한 분의 표를 얻기 위하여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닙니다. 선거가 끝나면 선거 빚을 감당하느라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전세보증금으로 선거 빚을 충당하여 작은 집으로 이사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1995년부터 시작해서 2014년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해 왔습니다. 피청구인의 역사에는 합당과 분당, 기쁨과 슬픔의 부침이 있었지만 이런 엄청난 희생이 쌓여 그 힘으로 이제는 정당지지율 조사에 이름이 오르는 당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피청구인이 폭력혁명노선을 몰래 감추고 전술적으로만 ‘합법정당’의 외피를 유지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피청구인이 ‘선거혁명’ 노선을 집권의 방법으로 채택하여 피청구인의 당원들이 만들어 낸 정치적 자산입니다.

 

o 마지막으로, 이 자료를 보아 주십시오. 이 자료는 2012. 6. 28.자 경향신문에 실렸던 우리나라 정당사를 국회의원 당선 수를 기준으로 도식화 한 것입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거대 양당이 독식해 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국민승리21’로 시작한 진보정당의 작은 흐름이 생겨났고, 현재까지도 이 선은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가느다란 형편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 심판청구는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진보정치의 노력을, 이렇게 작은 선으로 표현되는 진보정당의 활동을 강제로 지우려는 것입니다. 이 얇은 선 조차 끊어 버리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이 정도의 정치적 흐름도 용인할 수 없을 만큼 허약한 수준인가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됩니다.

 

o 아무쪼록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공정한 관점에 입각한 현명한 판단으로 청구인의 이 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를 기각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4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