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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한겨레인터뷰] “박근혜식 메카시즘에 민주당이 흔들린 셈”

[한겨레] “박근혜식 메카시즘에 민주당이 흔들린 셈”   
 
등록 : 2013.03.22 21:34  수정 : 2013.03.23 13:34 

[토요판] 뉴스분석 왜?/‘자격심사’ 도마 오른 이석기 의원

 

검찰이 경선부정 밝힌다고 당원투표 전수조사까지 하면서 거꾸로 내 무혐의를 밝혔다
그런데 국회서 자격심사라니 시쳇말로 황당무계할밖에… 
엠비정부의 대북 제재 실패는 북 핵실험으로 나타났다
이걸 다시 제재로 풀자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돼
그렇게 말했더니 또 종북이란다
정말 난 분단적 사고를 뛰어넘는 새 패러다임을 말하고 싶다

 

 

▶ 통합진보당의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의원직 박탈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22일 함께 발의한 자격심사안 때문입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과 관련해 두 의원에게 국회의원 자격이 있는지 따져보겠다는 건데요, 지난해 11월 검찰은 부정경선의 ‘핵심’으로 지목했던 두 의원에 대해 이미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사자인 이석기 의원은 두 당의 국회의원 자격심사 시도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일반적 상식으로 이게 말이…, 시쳇말로 황당무계한 정치적 보복…, 법적 근거도 없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을 거론할 때마다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22일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공동으로 발의했다. ‘국회의원 이석기·김재연’은 국회의원 299명의 ‘찬반 투표’ 결과에 따라 의원직을 잃게 될 수 있다. 자격심사안 처리는 전체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이뤄진다.

 

이석기 의원은 지난 21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두 당의 자격심사안 공동발의에 대해 “새누리당 등은 지금 경선부정 문제를 빌미로 우리 두 사람의 사상검증을 시도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 의원은 또 “지난해 경선부정 사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우리를 가리켜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 자격심사는 ‘박근혜식 매카시즘’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이 의원 인터뷰는 3월 국회의 마지막날(22일)을 하루 앞둔 21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19대 국회는 제2의 유신국회인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자격심사안 발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 정작 당사자인 이 의원은 아직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나?

 

“지난해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가 불거지며 몇 개월간 나와 관련한 (비판적) 기사가 1만건이 넘게 나왔다. 견해와 입장이 다른 것이라면 토론이라도 해볼 텐데, 사실관계에 입각하지 않은 비판과 주장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전면적 탄압으로 이어졌다. 진보당 입장에서는 대단히 열악한 언론 환경이었다. 지금도 시기가 좋지 않다. 한반도에 비(B)-52 전투 폭격기가 뜨고 핵잠수함이 들어오는, 6·25 이후 가장 심각한 전쟁 위기 상황을 (새누리당이) 불순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발언을 매우 신중하게 하고 있다.”

 

-자격심사에 대한 표면적 근거는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다.

 

“두 거대 정당은 이미 지난해 6월 19대 국회 개원협상 과정에서 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의혹을 이유로 자격심사를 하겠다고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검찰이 수개월간 정치탄압에 가까운 먼지털기식 수사를 해, 역설적이게도 지난해 11월 우리 두 사람에게는 부정경선과 관련한 어떠한 혐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검찰까지 무혐의 사실을 입증해줬는데 1년 뒤 다시 자격심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총선 때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까지 했던 정당이다. 민주당이 자격심사안 발의에 동의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이건 민주당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인데, 제1야당이 맞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경선부정 사태 때 진보당에 한국 정치사에 남을 만한 대규모 색깔론 공세가 쏟아졌다. 이때 민주당이 흔들린 것 아닌가 한다. 엄청난 색깔공세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에 입각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자격심사안 발의로 이어진 것 같다.”

 

-민주당에 서운하지 않나?

 

“서운하다기보다 지혜롭지 못한 것 같다. 색깔론의 최대 피해자가 바로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 등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그릇된 편견에 온몸을 내던지며 도전했다. 이런 정신이 야성의 근거이자 민주당 힘의 원천이었을 텐데, 지금의 민주당에는 이런 원칙이 없다 보니 그때그때 정치공학에 따라 휩쓸리는 것이다.”

 

-자격심사안 발의에 어떻게 대응할 건가?

 

“이번 자격심사 논란으로 19대 국회는 제2의 유신국회임을 자인하는 꼴이 됐다. 치욕의 국회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국회의원을 제2, 제3의 자격심사 대상으로 삼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의회민주주의의 근본을 파괴하는 대단히 위험한 시도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의혹은 지난해 당 내분과 분당, 검찰 수사와 지금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로 이어졌다. 당시 참여계에서는 경선 자체에 문제가 있었으니 경선에서 뽑힌 사람들 모두 사퇴하자는 의견을 냈고, 이 의원 등 당권파는 이를 거부했다. 그 선택이 여전히 옳았다고 보나?

 

“오늘날의 잣대로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 당시 참여계의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도 책임지지 말자는 이야기와 같다.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누가 부정선거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진실은 분명해야 한다. 진실규명 없이 정치적 책임 운운하는 것은 진보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다. 진보의 힘은 진실을 지키는 데에서 나온다.”

 

-당시 입장이 달라지지 않은 건가?

 

“우리 주장을 어떻게 밝히는 것이 좋을지 방법론은 다시 검토해볼 수 있었겠지만,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진실을 알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그 기간은 굉장히 고통스러웠지만 이제 진보당 사태의 본질은 드러나지 않았나. 김인성 교수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었다’고 표현했는데, 사태의 본질을 잘 묘사한 것이다.”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은 옳았지만…  
 

지난해 11월15일 대검 공안부는 같은 해 3월 치러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14개 검찰청에서 모두 1735명을 수사해 20명을 구속 기소하고 44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은 20만명의 당원 명부를 검찰에 뺏겼고, 3만5000명 당원의 투표 사실을 드러내야 했다. 구속 기소된 20명은 대포폰을 활용해, 더 나아가 아예 콜센터를 차려놓고 조직적 부정투표를 한 사람이었지만, 모바일 투표 방법을 모르거나 거동이 어려운 부친이나 아내를 위해 단순 대리투표 한 사례는 불구속 기소 처리했다. 검찰이 애초 표적으로 했던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기소자 명단에 없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 아이티(IT) 전문가인 김인성 한양대 겸임교수는 “후보자까지 가담한 유일한 조직적 부정사례는 참여계가 저질렀는데, 그 범죄행위의 당사자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조사위원이 되어 거짓보고서를 만듦으로써 진보당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를 괴멸시켰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검찰의 수사 결과가 진실에 부합한다는 것인가?

 

“검찰은 진보당의 진실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 약 1800명을 소환조사 하고, 462명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암투병자와 아이 엄마까지 수갑을 채워서 끌고 갔다. 검찰 수사는 진실성 여부보다 진보세력의 탄압을 위해 악행을 저지른 사례 정도로 기억하는 게 좋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다’는 표현은 검찰 수사 결과를 근거로 한 것 아닌가?

 

“검찰은 나를 기소하려고 당원투표 결과를 전수조사했다. 부정선거 혐의를 찾으려 샅샅이 뒤졌는데 결국 구속은커녕 입건조차 못한 것이다. 검찰은 나의 무혐의를 밝혀줬다. 역설적으로.”

 

-이 의원은 통합진보당 창당 당시 통합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이 의원이 그때 기대했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의 꿈은 멀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태도를 보면 ‘대중적’ 진보정당이 가능한가 회의를 품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처음 참여계와 통합할 때도 일부 당원은 ‘유시민과 손잡는 게 맞냐. 그 사람은 당을 깨는 사람이다’고 경고했고, 부정경선 사태 이후에도 일부에선 ‘봐라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대중적 진보정당의 노선은 옳았다고 본다. 우리가 지난해 통합진보당 만든 뒤 총선에서 정당 득표를 기준으로 10.3%(220여만표) 득표를 하지 않았나. 진보정당의 취약 지역이었던 수도권과 호남에서도 각각 4석, 3석을 얻었다.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의 정당성은 총선에서 이미 검증받았다. 문제는 노선이 아니라 노선을 구현하는 방법이었다. 우리가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경선부정을 이유로 내세운 자격심사가 실제로는 종북몰이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종북 주사파’라는 지적을 인정하나?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려는 매우 폭력적인 공격수단이자 색깔공세라고 본다. 중세시대에 횡행한 마녀사냥의 논리가 ‘네가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라’는 것이었는데, 그런 전근대적 폭력이 2012년 우리에게 가해진 것이다. ‘당신이 종북이 아니라면 스스로 그 사실을 입증하라’는 식으로.”

 

-이 의원 본인은 종북이 아니라는 건가?

 

“이렇게 봐야 한다. 최근 한반도 정세가 매우 험악한데 우리 당은 전쟁을 막으려면 남북간 갈등을 해소하고 대화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종북이라면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은 대체 뭔가.”

 

-종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일 텐데, 종북의 개념은 계속 확장하고 있는 것 같다. ‘종북 주사파’에서 ‘종북 좌파’, ‘친노 종북’이라는 말까지 쓰이고 있다. ‘종북의 확장’에 이 의원과 옛 민주노동당 등이 기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종북몰이 확산의 문제는 그걸 이용하는 지배세력이 있고, 그게 사회적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정부 논리에 반대하면 종북으로 몰아세우는데, 정치적 반대자를 타격하려는 논리에 우리는 이용당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대북문제(북한의 3차 핵실험을 가리킴)와 관련해 북한을 제재하자는 유엔과는 생각이 다르다. 북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

 

 

카메라만 대면 무조건 그걸 물었다

 

-통합진보당이 북한에 대해 좀더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아서, 진보진영 전체에 종북의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있다는 지적은 어떤가. 이를테면 민주당이 자격심사안에 합의해준 배경에는 통합진보당과 분명한 선을 긋지 않으면 자신들까지 종북으로 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질문의 취지는 알겠는데, 견해의 차이를 색깔공세로 둔갑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난해 북한이 위성을 쏘아올렸을 때 제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리는 반대했다. 제재를 반대하는 견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수만 가지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과학자로서 반대할 수도 있고, 우리가 나로호를 쏘았기 때문에 반대할 수도 있고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제재에 반대했다는 것만으로 종북으로 규정하고 색깔공세를 퍼붓는 것은 위험하고 폭력적이라고 본다.”

 

-로켓 발사에 따른 북한 제재 의견에 반대한 근거는 무엇이었나?

 

“제재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모든 남북간 교류를 끊고 제재와 압박과 공세의 방식을 굽히지 않은 것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이번 핵실험을 통해 드러났다.”

 

-아무 맥락 없이 최근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3대 세습에 대한 입장을 계속 묻는 것은 ‘종북몰이’가 횡행하는 지금의 한국 현실에서 사상검증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에 일부 동의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의원 또한 제도권 정치에 발을 담근 이상 대북문제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 또한 있다.

 

“실제로 지난해 엄청난 폭력적 공격을 당했다. 모든 매체의 질문이 그거(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견해)였다. 카메라만 대면 무조건 그걸 계속 물었다. 어느 매체를 통해 ‘북한 체제를 볼 때 남한과 미국의 시각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론에 공감한다’고 말했더니 종북이라고 비판했다. 그게 먼 옛날 일이 아니라 바로 지난해 일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제도권 정치세력이다. 만약 집권할 경우 대북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북한문제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 대중은 판단의 근거를 요구할 수 있다. 이를 밝히지 않으면 그로 인해 불이익을 입을 수 있지 않나?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답변은 흑과 백밖에 없다.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색깔론의 피해자였다. 그렇지만 북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밝혔다.

 

“이정희 대표조차 지금 집중포화를 맞고 있지 않나. 심지어 대북제재를 반대하고 평화를 이야기하자고 했다는 이유로 어떤 단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정말, 나는 기존의 분단적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고 싶다.”

 

-그런 시기가 찾아올까. 이명박 정부 5년이 한결같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자마자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하겠다고 하는 상황인데.

 

“이런 식의 불통과 국민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정부라면 5년을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독재정권을 극복한 국민들이 역사의 퇴행 앞에 결코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바뀔 것이다.”

 

최성진 윤형중 기자 csj@hani.co.kr